- 슬롯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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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15
서울로 돌아온 뒤, 세상은 다시 무채색의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세 평짜리 고시원 방. 누렇게 뜬 벽지, 곰팡이 냄새, 옆방에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 편의점 도시락의 차가운 밥알을 씹을 때마다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시시하고 지루했다.
눈을 감으면 강원랜드의 그 화려한 조명과 심장이 터질 듯한 전자음만이 컬러로 되살아났다. ‘30만 원. 그건 그냥 운이 좋았던 게 아니야. 내가 타이밍을 잘 맞춘 거지.’ 일주일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일용직 현장에서 시멘트를 바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바카라 테이블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저번에 보니까 사람들은 너무 감정적으로 하더라. 화내고, 욕하고, 무리하게 베팅하고... 나는 달라. 나는 냉정하게 확률로만 접근하면 돼. 하루에 딱 30만 원. 욕심 안 부리고 딱 일당만큼만 벌고 일어서는 거야. 이건 도박이 아니라, 투자다.’
스스로 만들어낸 논리는 완벽했다. 나는 그곳에서 썩어가던 '도박꾼'들과는 차원이 다른, 스마트한 사람이었다.
금요일 밤, 나는 다시 고속버스에 올랐다. 이번엔 혼자였다. 가방 깊숙한 곳엔 보증금을 뺀 돈 2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내 전 재산.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이건 씨드머니(Seed Money)일 뿐이니까.
다시 찾은 강원랜드는 여전히 뜨거웠다. 나는 슬롯머신을 지나쳐 테이블 게임 구역으로 향했다. 바카라 테이블. 뱅커와 플레이어, 둘 중 하나에 거는 단순한 게임. 50%의 확률. 세상에 이보다 공평한 게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처음엔 계획대로였다. 10만 원을 걸어 이겼다. 다음 판은 잃었지만, 베팅 금액을 두 배로 올려서 손실을 만회했다. 소위 말하는 ‘마틴게일 베팅’. 칩이 조금씩 내 앞에 쌓여갔다. 200만 원이 250만 원이 되었을 때, 나는 전율했다. ‘거 봐. 된다니까. 내가 맞았어.’ 자신감이 오만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딜러의 무심한 표정도, 주변 사람들의 탄식도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 테이블의 지배자였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잔인했다. ‘이번엔 무조건 뱅커야. 줄(연승)이 내려오고 있잖아.’ 확신에 차서 50만 원을 밀어 넣었다. 딜러가 카드를 오픈했다. 플레이어 8, 뱅커 7. 단 1점 차이 패배. “......” 머릿속이 하얘졌다. 50만 원. 일주일 치 일당이 10초 만에 사라졌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잃은 돈 생각에 이성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50만 원만 복구하면 집에 간다. 딱 본전만.’
그 다짐은 ‘딱 10만 원만 더’로 바뀌었고, 다시 ‘절반만이라도 찾자’로 바뀌었다. 베팅 금액은 점점 커졌고, 내 손은 떨리기 시작했다. 카드를 쪼는(확인하는) 그 짧은 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새벽 4시. 가방에 있던 200만 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머니엔 담뱃값 5천 원이 전부였다. 객장을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다리가 풀려 벤치에 주저앉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첫차 안에서, 나는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고, 입가는 침으로 말라붙어 있었다. 그토록 경멸했던, 이성 잃은 ‘노름꾼’의 얼굴. 그 흉측한 괴물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