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롯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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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15
며칠 뒤, 나는 유령처럼 다시 카지노 입구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돈은 없었다. 밥 먹을 돈도, 차비도 없었다. 그런데도 발길은 자석에 이끌린 듯 이곳을 향했다. 그저 그 안의 공기라도 마셔야 살 것 같았다.
입구 보안요원이 나를 막아섰다. “박진수 님? 잠시 사무실로 오시죠.”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사무실 직원이 건넨 종이 한 장. [출입 제한 통지서] 사유: 가족 요청 (모).
어머니였다. 연락이 닿지 않자 어머니가 내 명의로 출입 정지를 신청한 것이다. “저기요... 선생님. 한 번만요. 제가 안에 두고 온 게 있어서 그래요. 진짜 중요한 건데...” 나는 직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제발요... 딱 한 번만 들어가게 해주세요. 구경만 할게요.” 직원은 벌레 보듯 나를 내려다보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규정상 안 됩니다. 나가세요. 계속 이러시면 경찰 부릅니다.”
카지노 밖으로 내쳐졌다. 이제 정말 갈 곳이 없었다. 강원랜드 주변을 배회했다. 화려한 호텔 건물 뒤편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앉아 있었다. 소위 ‘강원랜드 앵벌이’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경멸했던 그들이, 이제는 내 동료가 되어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쓰레기통 옆에 누군가 먹다 버린 반쪽짜리 햄버거가 보였다. 파리가 꼬여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잽싸게 햄버거를 주워 입에 넣었다. 퍽퍽한 빵과 식어빠진 패티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비참함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씹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살아야 했으니까.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낯선 건물이 보였다. [KLACC (중독관리센터)] 도박 중독자들을 상담해 주는 곳이었다. 저기에 들어가면 밥이라도 줄까? 차비라도 줄까? 나는 망설이며 건물 유리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고리를 잡으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유리창 속의 남자는 내가 알던 박진수가 아니었다. 눈은 퀭하게 함몰되어 시체처럼 거무죽죽했고, 피부는 병든 닭처럼 떠 있었다. 무엇보다 눈빛... 초점 없이 흐리멍덩하면서도 탐욕스럽게 번들거리는 그 눈빛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의 것이었다.
“아...”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동안 내가 돈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32만 원을 잃고, 200만 원을 잃고, 빚 5천만 원을 졌다고. 돈만 다시 벌면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유리창 속의 저 낯선 괴물을 마주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곳 카지노에서 잃어버린 것은 돈이 아니었다. 성실했던 청년, 효도하고 싶었던 아들, 평범한 행복을 꿈꾸던 박진수...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문을 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등 뒤 멀리서 강원랜드의 화려한 불빛이 나를 비웃듯 반짝이고 있었다. “돈을 잃은 게 아니었어...” 내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흐느낌처럼 새어 나왔다. “나는... 나를 잃었다.”
